황량한 벌판에 혼자 서 있는데 멀리서 회오리바람이 이쪽으로 온다. 근처에 키보다도 큰 비석이 하나 있었으므로 바람을 피한다고 그것을 껴안고 눈을 감았다. 얼마나 지났을까.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. 바람이 지나갔다고 하는 것 같다. 그러나 나는 불안하여 한동안 그대로 서 있었다. 이내 사람들 소리가 멀어졌다. 눈을 떠 보니 다들 어디론가 가 버린 뒤였고 언덕 하나만이 보일 뿐이었다. 왠지 거기로 가야 할 것 같았다. 그쪽으로 발을 옮겼다.
가 보니 군주를 가운데 두고 사람들이 늘어서 있었다. 그들은 나를 책망하고 있었다. 왜 군주를 버리고 홀로 늦게 도착하였느냐는 것이다. 배신자라고도 했고 의심스럽다고도 했다. 나는 억울하였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. 그러자 비난은 더욱 거세어졌다. 지켜보던 군주가 결심한 듯 좌중을 조용히 시키며 말했다. 저자는 죄가 없다. 늦게라도 왔으니 다행이다. 갑자기 눈물이 났다. 몇 해 전 그날 이후로 그렇게 운 것은 처음이었다.
그러나 눈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.
- 광편(光片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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